[ 내 인 생의 책 한 권 ]
흰 지팡이도 너무 힘이 들어서 쥐고 걷기가 힘들었고, 내가 마실 물도 가방에 넣을 수가 없어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물을 가져가고, 길도 걸었습니다.
지금 그 시절을 생각해 보면 그 당시 저와 함께 걸어주셨던 몇몇 분들이 늘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힘이 들거나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그 힘들었던 기억과 함께 걸어 주셨던 분들이 생각이 나서 '이것 쯤이야'하고 다시 힘을 내봅니다.
코맥 맥카시의 '로드' 이 책은 맥카시가 노년에 얻은 어린 아들이 평화롭게 잠이 든 모습을 보고 아버지 없이 홀로 살아갈 험한 세상을 염려하고, 격려해 주기 위해 쓴 소설입니다.
재앙으로 인해 폐허가 된 참혹한 현실 속에서 길을 가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죽는 것이 살아남는 것 보다 더 편안할 것 같다"는 것을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다 공감할 정도로 그들의 삶은 힘이 듭니다. 더구나 서로 의지하고 함께 길을 가던 사람(주인공의 엄마이자 아내)가 삶을 포기하고 자살을 합니다.
더 이상 희망은 없을 것 만 같습니다. 그러나 아들에 대한 아빠의 사랑이 참 깊고 커 보입니다. 그 사랑 속에서 소년은 굶주리고 절망스러운 가운데서도 배고프고 병든 노인을 도와주며 희망을 버리지 않고 남쪽으로 길을 떠납니다. 번역을 한 작품이지만 문체가 아름다워서, 이들을 응원해주고 싶어서 계속해서 그들의 여정에 따라 책장을 넘겼습니다.
인생의 길을 가다보면 멈추어야 할 때와 가야할 때를 잘 모릅니다. 그러나 길이 멀고 힘이 들 때 옆에서 누군가아 함께 걸어준다면 재미나기도 하고 힘이 덜 들기도 할 것입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목적지도 모르지만 정답이 없는 인생의 길을 누군가가 가이드도 해주고 함께 걸어 주기도 한다면 지치고 지루하지만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제 저도 빚진 자의 마음으로 어떤 이들의 여정을 함께 걸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오늘을 열심히 살고 싶습니다.
[ 프로그램 포커스 ]
차 한잔의 행복
매주 월요일마다 승설재에서 김영숙 선생님에게 행다를 배웠다.
다도를 배우신 분들의 소감 모음
1. 차와의 인연
2. 어느 겨울 앞에서 (끽다거)
[ 차와의 인연 - 현주연 ]
1.
중학교 때 같은 동네에 살던 친구가 있었다.
같은 중학교를 다닐 때는 자주 만나곤 했는데 서로 다른 고등학교를 다니게 되면서는 몇 년간 통 만나지 못하고 지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친구가 이사를 갔고, 대학도 멀리 다녀서 소식도 모르고 지냈다. 20대 중반에 그 친구를 다시 만났다. 우리는 이야기하기 위해 장소를 정했는데 그 친구는 20대 답지 않게 해금인가 뭔가, 하여간 국악음악이 흘러나오는 전통 찻집으로 나를 안내했다. 그리고 내 의사는 묻지도 않고 녹차 중 '세작'이라는 것을 시켰고 잠시 후 우리 앞에는 차 주전자와 찻잔과 물 식힘 그릇이 나왔다. 한참 원두커피 향에 빠져 있던 나는 낯설기보다 뜨악한 느낌이었다.
친구는 두 손으로 차 주전자를 높이 잡고서 작은 잔에 차를 따랐다. '또로록' 맑은 소리를 내며 우아하게 잔을 감싸고 차를 마시면서 '차향이 참 좋다. 너도 마셔 봐.'
내 앞에 앉아 있는 그 친구는 내가 전에 알던 친구 같지 않았다. 몇 년 안 본 사이에 그 친구는 한국사를 전공하면서 다도를 배운 모양이었는데 마치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린 기분이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아주 기품 있고 멋있어진 것 같은 그 친구가 부러워 그 후 나도 기회가 되면 차를 마시곤 하였다. 그러나 잘 몰라서 도자기로 된 차 주전자를 하나 구입해서 티백 녹차를 넣고 차를 마시곤 하였다. 자주 먹으면 맛을 알 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차를 마셨지만 영 떫고 쓰기만 하여 맛은 없었다.
2.
내가 처음 차다운 차를 접하게 된 것은 십여 년 전의 일이었다.
내 은사님이 법정 스님께 선물로 우전차를 받아 오셨다. 시각장애인인 나는 투박한 보자기에 아무렇게나 묶어서 들고 오신 그 네모난 상자가 참 이상했다. 배가 고프고 출출하던 차에 네모난 상자가 있어 혹시 떡이나 카스테라가 아닐까?하는 기대감으로 보자기를 풀었다.
고급 상자가 나오고 그 안에 원통의 종이 상자가 나오고 다시 밀봉된 작은 봉투의 밀봉이 잘 된 차 봉지가 각각 하나씩 들어 있었는데 포장을 열심히 벗겨 보니 차는 한 줌도 되지 않았다. '한 줌도 안 되는 차가 왜 이런 고급 포장 속에 들어 있는거야, 차라리 떡이나 빵을 주시지' 하며 차 주전자를 꺼내어 그 차를 뜯어 아무렇게나 한 숟가락 푹 퍼 놓고 물을 부어 마셨다.
그런데 웬지 모르지만 맛이 달랐다. 차를 많이 넣은 것 같은데 쓰지 않고 고소하고 단 맛이 느껴졌다. 옆에서 은사님이 차를 드시고는 정말 좋은 차라며 감탄을 했다. 같이 있던 선생님의 지인들도 차를 한 잔 씩 드시더니 맛이 좋다며 계속 물을 부어 차를 우려 마셨다. 한 술 더 떠서 다음 날 다시 오셔서 어제 마신 그 차가 생각이 나서 왔다며 또 차를 마시는 것이 아닌가.
그 후 나는 그렇게 달고 고소한 차를 다시 먹어 볼 수 없었다.
3.
몇 년 전 나는 양약을 많이 먹고 약 부종이 있었다. 알레르기 체질이라서 약에 의한 두드러기도 있었다. 우리 안마원에 가끔 오시는 다도 선생님들이 내 얼굴을 보시고 많이 부은 것 같은데 차를 많이 마시면 내게 도움이 될 거라면서 보이차를 선물해 주셨다. 차를 우려 먹어보니 소변이 시원해지면서 부종도 빠지고 몸도 가벼워지는 것을 느끼게 되어 맛도 모르고 매일 약처럼 차를 마셨다.
그 후에 몸이 으슬으슬하고 몸살이 날 것 같으면 그 차가 생각이 나서 마시게 되었다.
4.
은사님이신 양만석 선생님은 미각이 뛰어난 시각장애인들이 제대로 차를 배워서 멋있게 차를 마시면 참 좋을 것 같다면서 가르쳐 줄 사람이 있는가를 알아보셨다. 여기저기 요청을 해보았으나 일단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뜨거운 차를 우릴 수 있을까라는 선입견과 시각장애인을 가르쳐 줄 방법을 몰라 다들 어려워 했고, ' 만일 차를 배우다가 손을 데이면 화상사고가 날텐데 하는 걱정으로 수락하는 이가 없었다.
선생님의 부탁으로 승설재의 김영숙 선생님이 우리를 대상으로 다도 수업을 해 주셨다.
녹차, 백차, 홍차, 오룡차 철관음, 이름만 듣던 차들을 배우고 무협지에나 나올 것 같은 명차들을 마셔보았다. 용정녹차, 안길백차, 태평후괴, 금준미, 황산무봉, 정산소종, 수선과 육계 백호은침...
이름도 어렵고 맛도 새로운 차의 세계가 열리고 있었다. 차를 배우고 나서 신기한 것은 차를 생각하면 군침이 돌고 차의 향기가 생각나며 미소가 지어진다는 것이고, 내 삶의 품격이 올라간 기분이 들어 삶이 풍요로워지는 기분이 든다는 것이었다.